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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속의 두 여인 강동구 2023-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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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속의 두 여인

강동구

 

차를 운전하다 보면 예기치 못한 일들을 경험하게 된다.

장마가 시작되는 칠월 초 떡 배달 가던 중 의암호 주변을 지나는데 청명한 날씨가 갑자기 어두워지더니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다 갑자기 소나기로 변하였다.

젊어 보이는 여승 두 분이 우산도 없이 비를 흠뻑 맞으며 걸어가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순간 여승들을 지나쳐 가다 차를 돌려 여승들 앞에 세웠다. 비가 워낙 세차게 오고 지나는 차도 없기에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어디까지 가시는지 모르지만 태워 드리겠다고 제안하니 여승들은 감사를 표하며 아무런 경계심 없이 동승 하였다. 내 차는 배달용 봉고차에 떡 방앗간 간판이 크게 보여서 그랬는지 낮 선 남자의 차를 선 듯 타니 조금은 의아하였다.

세상이 워낙 험악하여 선의로 베푸는 호의도 선 듯 받아드리기 어려운 세상이라 여승들을 조금이라도 안심시켜 주려고 찬송가 테이프를 틀었다. 내가 기독인이라는 사실을 알리면 마음에 안정을 가져오리라는 배려 에서였다.

여승들의. 목적지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규모가 작은 절이다. 기독교와 불교는 서로 다른 종교이기에 혹이라도 찬양 소리에 불쾌감을 느끼지 않을까 걱정도 되었지만, 여승들은 조금도 개의치 않고 찬양을 들어 주었다.

십 여분을 달리다 보니 여승들의 목적지에 도착하였고 여승들은 감사의 인사를 연발하면서 차라도 한잔하고 가라고 권한다.

불교도들은 어떨지 모르지만 사실 내가 아는 기독인들은 다른 종교에 대하여 매우 배타적이다. 기독인들은 유일신 하나님만이 참 신이라 믿기에 다른 종교는 우상으로 여겨 되도록 타 종교와의 접촉을 피하는 경향이 있다.

믿음이 약해서 그런지 나는 비교적 그런 감정에서 자유로운 편이다. 상대가 누가 되었건 어려움을 당한 이웃에게 선을 베푸는 것은 예수님의 가르침이고 마땅히 행해야 하는 인간의 도리다.

나와 종교가 다르다고 외면하거나 피할 필요는 없다. 스님도 길을 가다가 목사님이 어려움을 당하면 당연히 도와주실 것이다. 여승들의 권유에 차를 대접받으며 서로의 종교를 의식하지 않고 잠시 담소를 나누었다.

돌아오는 길에 생각해 보았다. 나는 오늘 내가 한 행동에 대하여 아무런 거리낌이 없지만, 기독인들은 나의 행동에 뭐라고 말할까? 궁금해 졌다.

잘했다고 칭찬할지 아니면 유일신 하나님을 믿는 기독인이 우상의 소굴에서 우상을 숭배하는 무리에게 대접을 받으면 기독교 교리에 어긋난다고 비난을 할지 이런저런 생각에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나는 기독인이지만 기독교 교리에 대하여 해박한 지식이 없다. 다만 하나님은 창조주시고 우리 인간의 죄를 대속하고자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사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게 하므로 인간의 모든 죄를 대속해 주셨음을 확실히 믿는다.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라고 가르쳐 주시고 형제의 잘못을 일곱 번의 일흔 번이라도 용서해 주라고 말씀하셨다.

기독인에게 불교나 타 종교인들이 원수도 아니고 상종하지 말아야 하는 대상도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구원해야 할 불쌍한 영혼들이기에 그들을 배척하지 않고 더 가깝게 다가가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해야 할 우리의 이웃이라 생각한다.

오래전 절에 떡 배달을 갔었다. 돌아오려는데 불자들 몇 분이 차에 태워주기를 청하여 함께 오면서 찬송가 테이프를 틀었다.

아저씨 교회 다니세요? “~이 틀렸네. ~ 아니 뭐가 틀렸다는 말씀이세요? ~이 그냥 틀렸어. 하신다. 불자들은 자신들이 불자인 줄 알면서 왜 찬송가를 틀었냐는 불만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사실 내가 찬송가를 튼 것은 내가 기독인임을 알리고 싶어서였다. 기독인 임에도 불구하고 절에 떡도 해다 드리고. 여러분들도 기꺼이 태워 드리는 편견 없는 기독인임을 은근히 나타내고 싶었던 것 같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그들의 마음을 상하게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지사지로 생각해 보니 기독인들에게 찬불가를 들려주면 기분이 좋을 리 없다. 내가 기독인임을 나타내고 싶어서 무례한 행동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스라엘 성지 순례를, 다녀온 적이 있었다. 갈릴리 호수에서 크지도 작지도 않은 배를 타고 호수 건너편에 있는 베드로가 잡았다던 물고기로 요리를 하는 식당에 점심을 먹기 위해 배가 막 떠나는데 애국가가 배 안에 울려 퍼졌다.

순간 놀라기도 하였지만, 감격스러웠다. 이곳에서 애국가를 듣게 될 줄이야 꿈에도 생각지 못하였다. 순례객들을 상대로 장삿속으로 하는 배려라 할지라도 감동은 매우 컸다.

어려움을 당한 이웃에게 선을 베풀되 내 기준에 의한 일방적이 아닌 상대방 눈높이에서 배려가 뒤따른다면 더욱 아름답고 훈훈한 선행이 될 것 같다.

어느 주일날 아침 교회에 가려고 떡 배달을 서둘러 마치고 집으로 가는데 아이를 업은 생면부지의 아낙이 내 차를 세운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남편과 함께 봉고차에 과일을 싣고 다니면서 장사를 하는데 남편이 몸이 아파서 운전을 못 해 발을 구르다가 내게 도움을 청한 것이다.

과일 차를 어느 지점까지만 이동해 주면 거기서 장사를 할 수 있으니 도와 달라고 간청하였다. 과일은 생물이라 제때 팔지 못하면 버려야 한다. 순간 고민에 빠졌다. 젊은 아낙을 도와주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였다.

아낙의 청을 들어주면 교회에 가지 못한다. 기독교 교리는 거룩한 주일은 반듯이 교회에 출석하여 하나님께 진실하게 성결한 마음으로 예배를 드려야 한다. 이는 기독교 교리의 핵심 중 핵심이다.

아낙을 도와주느냐 교리를 지킬 것인가 선택의 갈림길에서 나는 교리를 택하고 말았다. 벌써 오래전 일이지만 그날 이후에 나는 아낙을 도와주지 못한 내 선택이 잘못되었다고 후회를 많이 하였다. 예수님 이시라면 어떤 선택을 하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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