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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이 된 방앗간 강동구 2022-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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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설이 된 떡 방앗간

                                                                                     강 동 구

금 년이 어느덧 현대 떡 방앗간을 시작한 지가 35년째이다.

그동안 떡을 통하여 수 많은 고객들과 소통해 왔는데 이제 그 모든 애환과 눈물 아름다운 이야깃거리를 뒤로하고 현대 떡 방앗간은 역사 속으로 영원히 사라지게 되었다.

젊은 시절 경험도 없이 의욕만으로 시작한 사업이 실패한 후 수년을 방황하다 친구의 권유로 시작한 떡 방앗간이 현재 춘천에서는 떡 방앗간업계의 전설이라 할 만큼 춘천 시민들의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하지만 어쩌랴? 세월을 이기는 장사 없다더니 나 역시 이제 칠십 중반에 다가서니 온몸이 여기저기 손 볼 곳이 많아져 수선도 해보고 리모델링도 해 보았지만, 어느 정형외과 의사의 말대로 중고차 수리한다고 새 차가 되지를 않으니 더는 떡방앗간 일을 감당하기가 역부족이다.

떡 방앗간 문을 닫고자 마음을 정하니 만감이 교차한다. 봉의산이 항상 그곳에 있음을 의심하지 않듯이 현대방앗간은 언제나 그곳에서 춘천 시민들을 맞아줄 것을 의심하지 않을 춘천 시민들뿐만 아니라 다른 지방에서도 찾아오는 고객들이 헛걸음하여 얼마나 실망할까 생각하니 민망하고 죄스럽기 그지없다.

떡 방앗간을 접기로 마음을 정한 몇 달 전부터 방앗간을 찾는 고객들에게 폐업할 수밖에 없는 사정을 열심히 알렸다. 되도록 소문이 널리 퍼져서 헛걸음치는 고객을 최소화하기 위한 나름의 배려라고나 할까? 어떤 사람은 신문에 광고라도 하라고 하지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요란을 떠나 싶다.

고객들은 하나같이 그럼 우리는 어디 가서 떡을 해야 하냐고 야단들이다. 물론 춘천에는 떡 방앗간이 많이 있다. 십 년 이 십 년 심지어 삼 십 년이 넘은 단골들이기에 그동안 인간적인 정도 들고 신뢰도 쌓여 쉽게 다른 방앗간을 선택하기가 망설여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현대 떡 방앗간은 항상 손님들로 북적였다. 떡이 맛있다는 소문이 널리 퍼져 원근 각처에서 찾아오는 손님들이 너무나 고맙다. 때로는 주문이 넘쳐나서 일일이 주문에 응하지 못할 때도 있고 언젠가 명절 대목에 손님이 어찌나 몰려오는지 도저히 감당이 안 되어 낮 입에도 셔터를 내린 때도 있었다. 그런 방앗간이 문을 닫는다니 손님들로서는 이해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차라리 일거리가 적으면 좀 더 유지할 수 있으려만 넘쳐나는 일을 감당하기가 역부족이라 문을 닫아야 한다니 이런 아이러니가 없다. 쉽게 말하면 직원을 더 뽑으면 되지 않겠냐고 말할 수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못하다. 워낙 힘든 일이다 보니 고액의 급료를 주어도 지원자가 없다. 방앗간이 너무 잘 되어 문을 닫는다니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TV프로에 제보라도 해야 할 듯 싶다. 어떤 손님은 그동안 춘천 시민들에게 맛있는 떡을 해주느라 수고 많았다며 이제는 푹 쉬면서 여행도 다니고 취미 생활도 하면서 재미있게 사시라고 덕담도 건넨다. 반면에 어떤 손님은 아니 좀 더 하시지 왜 벌써 그만두냐고 원망 어린 푸념도 늘어놓으신다. 모든 손님의 애정 어린 한마디에 그저 민망하고 감사할 따름이다.

떡 방앗간이 문을 닫는다는 소문을 들은 손님들은 하나같이 하시는 말씀이 이제 시원 섭섭. 하시겠어요? 지난 35년을 돌이켜보니 만감이 교차하지만, 솔직한 생각을 말하라면 시원한 생각은 들어도 결코 섭섭한 마음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왜일까? 아마도 오랜 세월을 떡 방앗간에서 온몸이 부서져라. 일하면서 남들처럼 가보고 싶은 곳 해보고 싶은 일 하지 못하고 지내 왔으니 섭섭하기는커녕 시원하기 이를 데 없다. 오히려 폐업 날을 정해놓으니 하루가 천년같이 느껴진다.

사실은 현대방앗간의 오늘이 있기까지에는 아내의 적극적인 도움이 절대적이었다. 젊은 시절부터 어렵고 힘든 일을 처음부터 마칠 때까지 묵묵히 함께해 왔으니 너무나 고맙고 감사 하기 이를 데 없다. 아이들 기르면서 살림하랴 떡 방앗간 일 도우랴 아내의 몸이 열 개라도 부족 할 지경이었으니 무슨 말로 위로해야 할지 모르겠다.

자식들에게도 많이 미안하다. 초등학교에서부터 대학교 대학원에 이르기까지 한 번도 입학식 졸업식에 가보지 못했으니 이런 아비가 세상에 또 어디 있겠나 싶다. 그래도 자식들은 학교에 다니면서도 틈틈이 아비 일을 도와주면서 잘 자라주어 너무 고맙다. 특히 작은아들은 군 복무를 하면서도 명절 대목에 맞추어 휴가를 받아 와서 아버지를 돕기도 하였다.

방앗간을 접으면서 섭섭하지는 않지만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현대 떡 방앗간이 계속 이어지지 못하고 여기서 멈출 수밖에 없는 상황이 너무도 아쉽다. 요즈음 젊은이들이 소득이 괜찮아도 어렵고 힘든 일을 피하다 보니 후계자를 키우지 못하였다. 하기야 내 자식도 이 일을 하겠다면 적극적으로 말렸을 것이다. 새벽부터 일해야 하는 떡 방앗간 특성상 누구도 선 듯 나서기가 주저될 만도 하다. 하지만 떡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단순히 음식 이상의 특별한 의미가 있기에 전망이 밝아 누구든 도전해 볼 만도 하다.

현대는 인생을 이모작 삼모작이라 하던데 떡 방앗간을 졸업하고 이제부터 앞으로의 인생 이모작 설계를 어떻게 하여야 후회 없는 보람된 노년을 보낼 수 있을지 밑그림을 잘 그려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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